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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와 여행을 생각하며
    일단 뭐든 씁니다 2025. 3. 4. 22:57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아직도 일본에 안 가 봤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일본에 열댓 번은 가 봤을 것 같은데라는 말과 함께. 어쨌든 나는 부정할 생각도 없는 오타쿠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일드나 J-pop은 아는 바가 없고 만화도 그렇게 열심히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어설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데다가, 오타쿠면 당연히 가 봤어야 할 일본도 안 가 봤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갓반인' 보시기에 특별히 문제없지 않을까? 했던 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그래서 저런 말을 듣고 내가 그정도로 오타쿠인거냐고 슬퍼했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럼에도 일본에 안 가 본 게 이상할 정도로 남들 보기에도 수상한 오타쿠였던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그냥 오타쿠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제는 나도 일본 가 본 적 있는 사람이다. 남들은 어릴 때에 다 간다는 일본 여행이지만.

    2023년에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고, 당연히 도쿄에 가기로 했다. 도쿄에 가 보고 싶다고 염불만 외운지 십수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구글맵이 시뻘게질 정도로 핀을 꽂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게임의 성지순례, 박물관과 미술관, 맛있는 것들, 너무나 궁금했던 일본의 백화점, 30대의 마지막을 밟고 서서 과로로 쇠약해진 몸은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계획을 짰다. 여행 가기 전 6개월을 가이드북을 보고 구글맵을 쳐다보며 도쿄에 간다고 중얼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즐거웠다. 처음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갈 수 있는 여행이었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감각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아예 알지 못했던 것도 같기에, 모든 것이 즐겁고 새로웠다. 매년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먼 곳에 떠나 있어도 나를 괴롭히는 근심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의 불안을 잠시나마 덜 수 있는 기분은 이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동시에 항공사고의 확률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근심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종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는 낄낄대기도 했다. 

    그래서 마침내 가게 된 일본은, 어디까지나 내가 여행자이고 그 땅에서 정주하지 않을 생각이니 그렇게 느꼈을 테지만, 도쿄의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된 깔끔한 느낌도, 조용한 행인들도 좋았다.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도 땅 위로 가는 전철도 좋았다. 도시를 떠나 또 다른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끼다니 조금 웃긴 일이긴 하지만, 서울처럼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을 떠나 당도한 도시가, 더욱 커다랗고 낡은 도시가 이렇게까지 차분해 보이다니 재미있었다. 그저 내가 그런 곳으로만 다녀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작년에는 어디에 가야 할 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도쿄와 다른 소도시를 또 가게 되었는데 (사카이미나토는 도쿄 이상으로 좋았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다.) 여전히 즐거웠다. 이번에는 저번 여정에 가 보지 않았던 곳들 위주로 갔는데, 높은 전망대에서 보이는 커다랗고 구석구석 공을 들인 (그리고 아마도 많은 돈이 들어갔을) 고층 빌딩도 좋았지만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땅도 공기도 축축한 뒷골목도 좋았다. 연달아 두 해를 갔는데도 이 어마어마한 도시는 아직도 가 보지 못한 곳이 있고 (사실 서울도 구석구석 가 보지 못했지만) 궁금한 것이 많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꼭 외국이 아니어도 어디서도 도시를 한 겹 한 겹 걷어내어 볼 수 있지만, 도시가 나에게 주는 인상, 이를테면 간판의 글씨, 행인의 거리감, 건물의 생김새조차도 익숙한 듯 낯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곳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 가면 또 어떨까,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도시인 뉴욕은 어떨까. 일단 가면 실망하겠지만 수많은 실망 속에서도 단 한순간의 감격이 있다면 좋다고 기억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들은 여행을 마친 뒤에 흘러온 상념일 뿐이다. 당장의 여행 중에는 일본은 공조시스템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냐 왜 실내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거냐고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고(학부 졸업이 끝이니 그냥 맛만 본 정도이지만), 아무리 일본문화의 영향권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양국의 과거사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보니 이렇게 좋아하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러니까 니들이 우리를 그때 그렇게 쪽쪽 빨아먹었으니 지금 이렇게 우아하게 사는 거 아니냐,라고 들을 사람도 없는 곳을 향해 화를 내고 만다. 그러면서 또 아 일본 가고 싶다, 맛있는 과자는 너희들이 제일 잘 만들지, 하면서 부침개 뒤집듯이 마음을 홀라당 홀라당, 뒤집고 만다. 작년에만 해도 아, 이제 도쿄 당분간 안 가도 될 것 같다, 하면서도 또 한참이 지나니 근교로 다른 곳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구글맵을 하염없이 쳐다만 본다.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들이 보기엔 조금 우습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두근거림도 왔다 갔다 하는 마음도 재미있다. 남들은 이런 재미를 어릴 때부터 즐기기도 했겠군, 하며 곡절이 많았던 과거사를 후회도 원망도 해 본다. 해 봐야 소용없는 생각이지만, 지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여행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건 그냥 어디론가로 떠날 여유도 형편도 안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도시의 사람들 속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는 상태로 서서히 흩어지는 것이었기에, 굳이 서울에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애 썼고, 그 커다란 도시에 계속 남아있으려고 했던 것이다. 모든 도시가 내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당장 서울도 늘 나를 고통과 갈등에 빠뜨리고 말지만, 그래도 커다란 도시에서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한 점이 되어 어디론가로 흘러가는 것이 좋다. 아주 오래 잊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서울을 향하는 그 길을 나는 매일매일 떠나는 작은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 큰 곳으로, 이 도시와 이 나라를 떠나서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 나는 계속 어느 도시로 향하게 될 것 같다. 더 먼 곳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마침내 평생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소망했던 절대적 고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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