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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목격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일단 뭐든 씁니다 2025. 4. 4. 00:28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과거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과거를 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고정된 현상이라고 알고 있는 과거는 사실 맥락 위에 놓인 채 누군가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김재규가 "차지철 너 건방져" 라고 말했다는 것은 증언에 의해 구성된 결과물이지 김재규가 100%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시간을 돌려서 그 당시로 가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라는거다. 역사라는 게 그렇다. 인간이 살아온 궤적이지만 시간은 절대 뒤로 돌릴 수 없기에 결국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뒷 사람들이 이리보고 저리보고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닿고자 몸부림 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석사, 박사를 하지 않은 탓으로 두자.
어쨌든 우리 역사 전공자들의 열망이면서 열망이 아닌 것은 '뒷날에 남을 일을 목격하는 것' 이다. 나만 그렇다고? 그러면 나만 그런걸로 쳐도 상관없다. 다시 한 번 말하면 나는 뒷날에 남을 사건이 될 일을 오늘 목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개표방송도 좋아하고 뭔가 기념비적인 사건을 지켜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라에 우환이 드는 일이나 정말 심각한 사건을 보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아, 역사의 목격자가 되는 것은 싫은데." 웃긴 일 아닌가?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사건이 몇가지나 있음에도 당장 지금 벌어지는 큰 일은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정해져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고 싶지도 않고 지금 일어나는 개판을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태평성대에 살고 싶은 마음이, 미래에 내가 사는 시대는 '아 개노잼이라 시험에도 안나옴 ㅋ'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걸프전이 발발하고 뉴스 중계로 전쟁을 쳐다보던 그 때에 태평성대같은건 이미 날아간 것 같지만.
12월 3일 그 밤에 나는 무엇을 했냐면, TV도 켜지 않고 만화책을 보다가 느즈막히 트위터를 켰다. 비상계엄이라길래 대체 뭔소리야 하고 뉴스를 틀었다. 정말로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했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매일 역사에 남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는 말로만 듣던 (혹은 중간에 더 작은 이슈로 보았던) 시민들의 물결도 있었고 비겁한 위정자의 모습도 있었고 또한 말로만 듣던 광장과 해방구, 해방구의 변화와 정치세력의 합종연횡 등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절망적이지만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보통 시민들이 힘내어 민주적인 사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내 껄끄러운 마음으로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4월이 되었다.
내일, 이제 오늘이 된 4월 4일. 마침내 탄핵심판의 결론이 나는 날이다. 사실 이런 식의 역사에 남을 일은 겪고 싶지 않았는데, 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커다란 흐름을 엮어가는 작은 개인의 모임이고 그 개인이 모여 무엇을 요구했고 그에 대한 응답은 무엇인지 지켜봐야만 한다. 눈 돌리지 않는 것, 그게 그나마 이 세상에 살아가며 썩 도움도 안 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힐 것 같은데 어쩐담. 이 또한 원만하게 해결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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