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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신 없이 바빠서 이것도 저것도 못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11월. 사용 못 한 연차는 가득가득 남았는데 올해는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슬픈 일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지만 여튼 그동안 있던 일을 기록을 해 놔야 나중에 복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기록을 하겠다.
우선 6월에 팀장이 퇴직을 하는 바람에 어영부영 내가 팀장 대행을 맡았다. 6월, 7월, 8월. 3개월을 팀장 대행 업무 하면서 내 일도 하면서 지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반다이 엑스포도 가고 펜타포트도 다녀오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긴 했는데 (펜타포트도 펄프가 오는 게 아니었으면 아마 안 갔을 듯. 오후 늦게 갔는데도 너무 더워서 끔찍했다.) 여튼 뭔가 이것저것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새 팀장님을 만나고 일주일만에 다른 팀으로 옮겼는데, 그 뒤로 그냥 두 달이 훅 하고 지나간 것 같다. 물론 새로운 팀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좋다. 팀장님도 좋고 동료도 좋고 더 윗분도 좋고, 업무도 어렵지만 좋고. 문제는 오직 나다. 매일매일 "이렇게 큰 일을 제가 해도 되는거에요?" 라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치만 나는 회사에서, 내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그 꿈을 잘 이뤄내기 위해서 정진하며 살아야겠다.
최근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건반 사 놓고 집에 세워놓고 연습을 많이 안 했는데, 제대로 연습해 보려고 건반 스탠드도 구했다. (그동안 책상에 올려놓고 했더니 높이가 하나도 안 맞아서 팔이 무지무지 아팠다) 그런데 피아노 좀 쳐보겠다고 또 책 사는 병이 도져서 이런저런 악보를, 또, 사버렸다. 이것저것 사긴 했는데 치는건 정해져 있다. 여튼 연습하는 빈도를 조금 높였더니 어릴때 치던 정도의 실력은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어릴때 배웠다고 해 봐야 나는 재능이 없는 편이라서 잘 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성인 되서 다시 하게 되면 옛날보다는 더 잘 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저 연습을 하고 있다. 난 원래 한가지만 들입다 파고 들면서 연습 하는거 잘 한다. 대학 시절에 서예 할 때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몇시간씩 연습 많이 했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오늘도 건반 두시간 연습 했으니 연습 자체는 집중해서 잘 하는 것 같다. (실력이 향상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요즘 업무 하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스케쥴에 맞춰서 쳐내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생각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게 파고 들면 소비자들을 설득시킬 수 없잖아, 하면서 자꾸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고 하는데, 배운 게 도적질이라 한 번 생각을 시작하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빠져들고 만다. 이 생각의 흐름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나는 왜 맨날 쓸데 없는 고민만 할까? 나는 왜 자신의 업무능력에 늘 확신이 없을까? 나의 겸손은 가짜 겸손일까 진짜 겸손일까? 일 하다가 별 이상한 생각만 다 하는 걸 보면 두뇌가 싱싱해진 것 같다. 일과 생활에 찌들어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는데, 나름 좋은 거 아닐까? 라고 또다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멍청이의 모습이다.
지난 주에는 엄마의 기일이 있었다. 11월 중에는 엄마 제사 때문에 절에 가야한다 (제사는 음력이니깐). 엄마를 떠내보낸지도 3년이 되었는데, 난 이제서야 비로소 당시에 응급실에서 트위터에 이렇게저렇게 불안한 마음을 토로한 걸 다시 쳐다볼 용기가 났다. 내 생각보다 많이 담담하게 넘긴 것 같은데, 그 또한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가능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난 엄마의 투병 기간 중 아주 길게, 길게 작별을 준비한 거라고 늘 생각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었을 때 역시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늘 그렇듯이, 이제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하겠냐,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는 태도로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슬퍼하면 같이 있는 가족들이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도 (놀랍게도) 했던 것 같다. 뭐든 씩씩하게 이겨내고 싶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무함이 찾아왔다. 힘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지만 죽음은 무섭기에 삶이 이어졌다. 매일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생이 끝나면 어떻게하지? 싶은 감각에 놀라서 몸서리쳤다. 죽기 싫어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또 흘러보내고 마침내, 나는 늘 어딘가가 비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어릴 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텅 빈 감각이 괴로웠다. 그래서 뭐라도 의미를 찾기 위해서, 뭐라도 집어넣어 채우기 위해 애썼지만 채워질 수 있는 종류가 아님을, 본질적으로 남들이 가진 게 나한테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주아주 늦게 깨달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살아가야지. 난 이렇게나 비어 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11월이다. 나에게는 주어진 일이 있고 그걸 열심히 하며 연말까지 살아야겠다. 또 내년도, 그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욕이 나오면 욕이 나오는대로 웃음이 나오면 웃음이 나오는대로. 세상에 내 발자국을 새겨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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