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6월 10일일단 뭐든 씁니다 2020. 6. 10. 23:29
1, 몇해 전에 87년 체제가 20년간 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였다고 썼다가 앗차 30년 전이지 하고 수정한 적이 있다. 벌써 세월이 흘러 흘러 87년생도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87년생은 아니고 6.10. 항쟁과 나의 관계는 그냥 내가 사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시험공부 하느라 정신 없었던 그런 정도의 사무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정착해 가는 것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어른이 되고 주권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나이를 먹어 대통령이 되겠지.
내가 태어났을 때 대통령은 노태우였고 어릴 때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 를 흉내내다가 이모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혼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유를 전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어른들은 대통령을 흉내내거나 비웃는 것이 죄가 된 시대를 살아왔다. 나는 그런 시대를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유신 잔당이 나라의 중추에 들어가니 대통령 욕을 하면 큰 일이 나더라. 지금은 대통령 욕을 하면 큰 일이 나는 건 아닌데 귀찮게 하는 인간들이 들러붙는다. 좀 빨리 대통령 팬덤이든 절대복종하는 추종자들이든 뭐든 없이 산뜻하게 정치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정치인은 시민의 머슴이지 숭배할 대상이 아니다.
2. 역사를 전공했긴 한데 나는 역사 덕후는 아니고 그냥 어릴때부터 역사책 읽고 박물관 다니거나 다큐멘터리 보는 게 재미있었던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박물관을 좋아하고 옛날 그림이나 글씨 도자기 보는 걸 좋아했지. 그래서 사학과보다는 다른 전공을 했어야 할텐데 하고 가끔 생각도 하는데, 여튼 나는 모교의 사학과에서 재미있게 공부했고 만났던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었으니 대체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졸업한 지도 10년이 넘어서 이제 그때 공부한 건 가물가물하지만 (게다가 학생때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몸에 익힌 태도는 사는 데 제법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역사라는 게 고정된 사실로 영영 굳어지는 건 아니고 언제든지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점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역사는 고색창연한 옛날이야기 덩어리가 아니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를 갖고 다시 쓰여질 수 있는 사건의 덩어리다. 우리는 '선배' 나 '선생님' 들에게 민주화 운동의 숭고함과 멋진 점을 주로 배웠지만 사실은 그 뒤에 숨어 있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고 그 사실을 안 이상 옛날과 똑같은 무게감으로 민주화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을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치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정치에 입문한 아무개 아무개 정치인들이 룸싸롱에서 놀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들을 절대 예전처럼 볼 수 업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그래서 무작정 숭고하거나 무작정 사악하기만 한 것은 잘 없고, 각자 다층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매일 이야기하지만 꼭 이걸 나쁜 쪽으로 틀어서 쓰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사람들이 양심을 조금 더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기 있는데, 히틀러도 어린아이와 동물을 좋아하고 여자한테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3. 오늘은 6월 10일이고, 민주화항쟁의 날이고, 아침에 "대졸자들이 전공과 상관 없는 일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드라" 라는 뉴스를 봐서 그냥 몇마디 씨부려 보았다. 나도 전공과 하등 상관 없는 장사집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있다. 뭐 별로 후회 되는 건 없고, 좋은 것을 배우고 겪었으니 충분히 인생에 도움이 된다 생각하고 있다. 그냥 사람들이 공부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살 걱정을 아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는데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하나 늘 고민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다같이 힘을 모아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지. 그런 믿음 하나하나가 모여서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좀 덜 막막한 것 같다. 아마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그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작은 개인 아니었을까? 뭐 아니면 말고.
'일단 뭐든 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23일 (1) 2020.06.23 2020년 6월 13일 / 14일 (0) 2020.06.14 2020년 6월 12일에 못 쓴 일기 (0) 2020.06.13 2020년 6월 9일 (0) 2020.06.10 2020년 6월 8일 (0) 2020.06.08